1200여년전 한 스님은 많은 불교경서와 농사, 뽕나무재배, 의학, 건축의 서적들과 뛰여난 일꾼 80여명을 거느리고 일본에 도착하여 일본의 뜨거운 환영과 존중을 받았다. 그분이 바로 유명한 당조의감진대사이다. 감진스님은 5년동안 다섯차례 일본으로 건너 가는데 실패하였다. 서기 748년 10월 감진스님 일행은 저우산군도에서 출발한 다섯번째 시도에서 태풍을 맞아 해남도 남쪽의 진주(오늘날 싼야)에 이르게 되였다. 이듬해(서기749년) 동산령에서 처음으로 절간을 세운 뢰진해스님은 제자를 분부하여 감진스님를 모시게 되였다. 진주 장군 풍숭채와 800여명 갑옷병사의 호송하에 감진스님 일행18인은 40여일의 기나긴 여정 끝에 만주(오늘날 만닝)에 도착하게 되였다. 전하는데 의하면 그날 날씨는 더없이 화창하였고 새들은 앞다투어 노래하며 모든 사람들은 집을 비우고 나와 스님을 따라 함께 산을 오르게 되였는데 길가의 큰 바위도 자리를 비켜주고 들꽃도 만발하며 파도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는 가운데서 뢰진해법사가 선을떼여 백여명 스님들과 경문을 읽고자 예쉰둘의 감진스님은 “오늘 동산에 오르로 다음날에는 다시 일어나리라”고 감탄하여 여러 제자들과 동산령에서 법의를 전달하고 경서를 강의하였는데 그 소리는 골짜기에 여러날 내내 울려퍼졌다고 한다.
구름계단으로 200개 계단을 뛰어넘으면 길고 구불구불한 협곡을 볼수 있다. 조각한듯한 기괴한 돌들, 깊숙히 파고드는 동굴들, 하늘이 선물한 물줄기 따라 벼랑, 동굴, 숲, 들꽃 모두 색다른 경치를 빚어내고 있다. “여러개의 푸른빛이 골짜기를 메우고 한갈래의 물줄기가 숲을 에도는구나” 전하는데 의하면 골짜기 사이 영지초가 자라나고 있는데 옛신선들은 위험한 절벽을 따라 영지초를 캐여냈다고 한다.